‘사람’이 만들어지는 법 | 강다은


   동자동이 ‘쪽방촌’이라는 것과 그런 쪽방들은 집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만을 안고, 펜과 공책 하나만을 달랑 들고서 동자동에 방문했다. 청소년직접행동 활동에 참여하고, 동자동에 방문하기 전까지는 내게 동자동이나 ‘쪽방촌’이라는 말은 전혀 생소한 것이었다. 비닐하우스나 쪽방, 고시텔 등이 집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도 처음 들어보는 사실이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돈을 벌지 못하면 어쩌나, 빚에 쫓기면 어쩌나 걱정과 불안에 떨어오기만 했지, 가난에 시달리게 되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어디에서 살아가는지는 관심에 두지 않았다. 가난은 죄인가? 현재 사회에서는 그래 보인다. 장애를 가지는 것은 사고이거나 불운한 일이라고 받아들여지지만, 가난하다는 것은 뭔가 잘못해서, 악착같이 살아내지 못해서 그렇다고 받아들여진다. 한번 가난해지면 끝없이 구렁텅이로 빠져 들어가는 마치 개미지옥 같은 가난을 보면서 자란 우리들한테 가난이란 ‘저렇게 되면 안 되는 것’이다. 행복한 삶을 기준으로, 겪어서는 안 되는 마치 게임오버의 선과 같이 여겨지게 되는 것이다. 가난에 쫒기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는 사람들에게 가난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만큼 가난과 삶 사이에는 두꺼운 울타리가 둘러쳐 있다.


   서울역에서 걸어서 10분도 안되어 도착해서는 먼저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 사무실로 가서 마을 이사님들을 만나 뵙고, 여러 이야기들을 들었다. 아파트 거실보다는 조금 작은 방안, 가득 들어찬 길쭉한 책상에 둘러앉아 한 분 씩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가 만들어진 얘기부터 목적, 현황, 공공주택사업 얘기까지,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셨다. 한분이 설명해주신 것처럼 어색하거나 끊기는 부분 없이 매끄럽게 이야기해 주셔서 이해가 잘되었다. 이곳에 그대로 옮겨 적지 못하는 나의 필력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매월 이곳에서 발간하는 소식지도 우리에게 쥐어주셨는데, 심플하지만 필요한 내용은 전부 들어가 있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돕기는 힘들지만, 열 사람이 모여 한 사람을 도울 수는 있다“

   내가 들은 이사님들의 말씀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문장이다.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 사무실에 가득 쌓여있던 연료들과 소식지에 실려 있던 후원 목록도 함께 기억에 남는다. 동자동에서는 여러 사람이 한사람을,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기꺼이 돌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들었던 '공공개발'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공공개발은 서울시에서 새로 아파트를 지어 값을 싸게 책정해 동자동 주민들의 거주권을 보장하는 사업이다. 그 아파트로 모두 다 같이 가서 사는 것이 현재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와 주민들의 바람이기도 하다. 들은 바로는 2026년 즈음에 완공된다고 하고, 2019년에 처음 나왔던 이야기였으나 무산되고 2021년 2월 5일에 다시 발표된 것이다. 건물주들과 국가에 의해 이 일이 다시금 무산될까봐 불안이 이만저만이 아니시라고 한다. 현장간담회 때도 국가에서는 쪽방 소유주들만 만나보고 갔다고 한다. 이사님은 이 일을 추진하시면서 배운 것이 '높은 사람들은 작은 것 하나에 목 맨다'는 것이라고 하셨다. 건물주들은 이 공공개발 소식에 적극 반대하며 '민간개발'을 외쳐대고 있었다. 이사님 두 분이서 마을을 소개시켜 주실 때, 마을에 즐비한 빨간 반대 깃발과 대문짝만한 현수막들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특히 한 현수막에 '........주민분들과 함께 만들어나가겠습니다.' 이런 말이 써져있는데, 주민들의 바람의 '바'자도 모르면서 잘도 저러는구나 싶어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는 이사님 두 분을 따라 마을을 돌아다녔다. 동자동에 대해서 별로 알아간 것이 없어서 질문이 얼른 생각나지 않아 입은 다물고 있었지만, 대신 최대한 많은 걸 배워가는 것을 목표로 했다. 하루 종일 행동과 말과, 너무 두리번거리지 않도록 신경썼는데, 내가 '구경하고 있다'는 이미지가 계속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동자동은 그 주변에 세워져있는 높고 웅장한 빌딩들 때문에 사회의 그늘 속으로 가려진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동자동의 길거리는 겉으로는 다른 길거리들과 별로 다르지 않아서, 여길 계속 지나다니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았다. 건물 안에 들어서서 좁고 어두운 계단을 오르면 쪽방들이 쭉 이어지는 복도가 나왔다.

    나는 무엇보다 건물 주인들이 자기 건물에 코빼기도 비춘 적이 없다는 것이 화가 났다. 그냥 방치해 놓고 돈만 받아가면 되는 물건마냥 보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처음에는 이런 건물을 무슨 생각으로 만든 건가 싶었는데, 어떤 이유로든 집 없는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앉게 되는 것보다는 이런 건물이라도 있는 것이 나은 것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책을 읽고 굳어진 생각이지만 동자동은 정말 서울시와 동자동 건물 소유주들의 철저한 이익 하에 존재하고 유지되어오고 있는 것 같다.


   동자동에 다녀오고 나서는 더 많은 이해를 위해 <동자동 사람들>이라는 책을 읽었다. 동자동으로 봉사활동을 간 학생들이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겠다' 라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심장이 쿵 내려앉았고, 동자동에 들른 사람이라면 누구나 둘러보고 간다는 노란 건물, '해뜨는 집'에 대한 부분을 읽었을 때는, 별 생각을 가지지 못하고 둘러보았었던 노란 건물이 생각나 충격에 휩싸였다. 이 건물은 2015년에 집주인의 강제 퇴거 명령이 내려졌을 때, 주민들이 목소리를 내어 지켜낸, 서울시가 운영하는 곳이다. 서울시가 운영하고부터 노란색으로 칠해졌지만, 실제로는 동자동에서 가장 노후한 건물 중 하나이다. 동자동에 가기 전에 이 책을 읽어보고 갔었더라면 별 후회를 남기지 않고 다녀올 수 있었을까 다시금 후회되었다.

   책에서 가장 감명 깊었던 부분은 공짜 짜장면과 1,000원을 내고 먹는 식도락에서의 한 끼의 차이에 대한 부분에서였다. 봉사자들은 공짜 짜장면을 나누어주면서, 불평을 해대는 주민들에 대해 '감사할 줄'도 모르고 공짜로 주는 것에 길들여져 버린 사람들이라고 불만을 토로한다. 그러나 그것은 주는 것에 대해 다시 되갚아줄 수 없는 주민들의 감정이 그렇게 표현된 것뿐이었다. 공짜로 줄을 서가면서 그저 받기만 하는 것보다는 1,000원의 값이라도 대가를 지불하고 당당하게 먹는 것이 훨씬 더 가치 있고 서로가 존중받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사람이 주변 환경에서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보다 사막에서 태어나느냐 북극에서 태어나느냐 같은 주위 환경들에서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말이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우리는 결국엔 주변 사람들에게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부모님, 친구,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 그 모든 것들은 주변 환경이 어떠한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도와주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될 수밖에 없다. 사랑방 주민협동회 이사님들이 해준 이야기를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다. 그저 이 사람들과 서로 도우면서 살고 싶다는 그 마음에서 가장 많은 걸 느끼게 된 것 같다.

   이 글이 너무 주제넘게 비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동자동의 공공개발이 무산되거나 하는 일 없이 무사히 진행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강다은 | 인천에서 대안학교 고등과정을 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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