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 망토를 두른 학생 | 반달


   12년 만에 교단에 섰다. 처음으로 고등학교 3학년, 곧 졸업을 앞둔 더 코앞에는 입시를 앞둔 학생들과 교실에서 만났다. 10년이 넘는 시간, 공교육 교실에 오기 전 접했던 학교 밖 활동과 세상 공부를 밑천 삼아, 오래간만에 만난 소중한 인연의 자리에 정성을 쏟았다. 학생들이 흥미롭게 볼 수 있으면서, 함께 이야기 나눠 볼 만한 영상 자료를 찾고 프리젠테이션을 만드는 일이 매일 이어졌다. 12년의 제도교육이 끝나가고 있고 스무 살을 앞둔 그대들이 살고 있는 사회의 현재 모습을 살펴보고 생각해보자고 제안하는 수업을 만들고 싶었다. 입시만 남고 모든 것이 사라진 학교는 아니어서, 입시 선택과목이 아니라 교과 내용 자체에 기반한 수업을 할 수 있었다.

   등교와 온라인 수업을 번갈아 하고 있던 중에, 공개수업을 하기로 한 주간은 등교 수업이었고, 진도는 ‘성 불평등’을 주제로 한 수업을 할 차례였다. ‘사회문화’ 교과 단원 중에는 ‘사회 계층과 불평등’ 단원이 있다. 소단원에는 ‘다양한 사회 불평등’을 제목으로, ‘성 불평등의 양상과 해결방안’이라는 장이 두세 쪽 구성되어 있다.


   교실 뒤편에 짬 시간을 내어 참관을 오신 여러 선생님들이 서 있고, 학생들은 손님들이 온 날이었지만 다행히 평상시와 크게 다르지 않은 태도로 수업에 참여했다. 고개를 들고 있는 학생, 편안하게 팔 베고 누워서 이야기를 듣는 학생, 돌아앉아 벽에 등을 대고 바라보는 학생 등등. 수업 시작 첫 질문은, 단원 제목에 관한 것이었다.

   “이전 교과서에는 ‘남녀차별’ 혹은 ‘양성평등’에 관해 이야기 했지만, 이제는 ‘성 평등’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뭘까요?”

   성이 두 개가 아니라는 것, 성이 태생적으로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렇게 성정체성에 관한 이야기와 성 역할 고정관념에 관한 이야기를 전했다. 흥미롭게 이야기를 들었지만, 활기찬 토론 수업이라든지 질의응답이 활발한 수업은 아니었다. 교사의 질문에 그리고 교사가 보여주는 영상에 대해 간단한 답을 하는 정도였다. 수업 바로 며칠 전에 SNS에 전해진 지하철광고 훼손 사건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이미 알고 있는 학생이 몇 있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사진에 얽힌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었다. ‘2020 국제 성소수자혐오 반대의 날 공동행동’이 신촌역에 게시한 광고 ‘성소수자는 당신의 일상 속에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이틀 만에 누군가에 의해 찢겨 훼손된 사건을 전했다. 낯설거나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더라도 존재를 부정하는 혐오의 태도는 갖지 말자고 당부를 했다.

   그리고 내겐 성소수자 친구가 있음을 전했다. 나 역시 다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낯설고 먼 존재만은 아니라는 것, 여느 친구와 크게 다른 것이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만나보거나 아는 사이가 된다면 이해의 폭을 조금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우리 사회에 성소수자도 함께 살고 있고 직장을 다니고 공부를 하고 연애를 하지만, 이들의 혼인은 한국 사회에서 아직 인정되지 않고 있음을 이야기했다. 몇몇 학생은 김조광수의 동성혼 소식을 들었다고 답했다. 뉴질랜드에서 동성혼인 합법화가 된 이야기를 담은 짧은 영상을 보며 수업을 마쳤다.


   학생들의 반응은 특별할 것이 없었는데, 수업 참관을 온 교사와 수업 내용을 전해들은 교사의 반응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사회적 다수와 사회적 소수의 위치는 고정적이지 않다는 이야기, 그래서 우리 자신이 때로는 사회적 약자가 되기도 하고 사회적 강자가 되기도 한다는 이야기가 인상 깊었고 크게 배웠노라는 과학 선생님의 인사에 사실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자신이 사회적 강자가 되기도 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는 말, 정직한 성찰의 말을 해 준 것이 고맙기도 하지만 지정 성별 남성인 인문계 고등학교 정규직 교사 10년 차를 훌쩍 넘어선 분께서 자신이 사회적 강자의 위치에 서있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말이 내게는 무척 어색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이전 학교에서 개인적으로 찾아와서 손을 맞잡고는 비밀스럽게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고백한 학생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몰라 당황했던 경험을 이야기 해 준 영어 선생님과는 두런두런 학교 현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성소수자에 대해 어떤 이해와 어떤 태도를 갖는 것이 바람직한지 일선학교에서 교사들은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고. 반성과 함께 방안을 모색하려는 선생님을 보며 안타까우면서 또한 고마웠다. 성 소수자와 그 부모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커밍아웃스토리>의 주인공들 대부분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확인하게 되는 시기가 중고등학교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비빌 언덕이 되어주는 어른은 찾기 어려운 현실을 확인하는 대화이기도 했다. 

   “선생님, 그 때 제가 어떻게 대했어야 했을까요?”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대하려고 했던 것 같지만, 정말 그 학생이 바라던 것은 자신을 알아주기를 바란 것이 아니었을까, 미안함과 아쉬움이 남아있다고 했다. 윤리 교과니 사회 문화 교과니 수업 차원에서 사회적 소수자를 차별하지 맙시다 정도로 그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에게도 물음이 생겼다. 교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사회 저 건너편에 있을지도 모르는 약자를 향해 갖춰야 할 민주시민 태도 정도로 얘기하는 것이 혹여 교실에 앉아 있을 그 성소수자 학생에게는 자신을 교실에서 지워버리고 마는 일이 되는 것이 아닐까. 종교적 신념에 찬 교사가 교실에서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폭력적 발언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듣고 있으니, 아찔하다. 상위 몇 퍼센트의 학생을 위한 수업으로 채워지는 교실에서 대개의 학생들은 자신이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린 듯 느낀다고 하는데, 성소수자 청소년은 몇 겹의 투명망토를 뒤집어쓰고 지내고 있을까.


   2012년에 서울대 학생이 된 김보미 님은 2015년 서울대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했고, 선거기간 동안 레즈비언 커밍아웃을 해서 화제가 되었다. 지금은 대학원에 다니고, <다양성을 향한 지속가능한 움직임-다움>이라는 청년 인권 단체 활동을 하고 있었다. ‘청년의 사회적 현실’을 이야기하는 중에도 성소수자 청년이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활동하고 있다는 김보미 님 역시, 자신의 성정체성을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고 했다. 당시에 주위 몇몇 사람들이 알게 되었는데 상위권 성적의 학생이라는 것만 인정할 뿐, 교사들은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서는 짐짓 모르는 체 했단다. 한편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라는 점에서 어떤 보호를 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지난 해 교실에서 했던 나의 수업과 직장 동료였던 선생님과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도 나도 막막한 심정이었다.

   잔뜩 긴장해서 정성을 들였다고는 해도 수업에서 나는 교실에 앉아 있을 학생 중에 누군가 투명망토를 두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가? 나 역시 교실 밖 먼 곳에나 있는 사람 취급하며, ‘차별하지 맙시다’ 하고 만 것은 아닐까? 다수를 점하는 성정체성을 갖고 있는 나는 사회적 강자의 위치에서 그들에게 투명망토를 씌우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학교와 교실이 그 망토를 벗고 지낼 안전한 장소가 될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차라리 물어보면 좋겠어요. 수군거리지 말고.”

    <다움>과 만난 자리에서 활동가 심기용 님이 해준 당부를 되새겨 본다. 많이 만나고 솔직하게 물어보고 더 많이 이야기 나누면 좋겠다고, 편견에 기대어 짐작하고 섣불리 결론내리지는 말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반달 |

Ⓒ푸른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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